
나는 정신과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곳은 알코올 의존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머무는 병동이었다.
간호사실 앞에는 큰 유리창이 있었고, 그 너머로 환자들이 머무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TV를 보거나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들, 그리고 양옆으로 이어진 병실들.
그 공간은 단순한 병동이 아니라, 각자의 사연과 고통이 머무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배워야 했다.
영어 의학용어, 약 이름과 효능, 복용 방법, 환자 응대 방법까지.
화장실에 앉아 있는 짧은 시간조차 공부로 채웠고,
정신의학 책을 읽으며 노트에 필기를 반복했다.
특히 ‘환자와의 대화’라는 책은 내게 큰 의미였다.
어떻게 말해야 상처 입은 마음을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들어야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지를 배웠다.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늘 진심으로 환자들을 대하려 노력했다.
그 마음은 전해졌는지, 환자들은 작은 쪽지로 나에게 마음을 건넸다.
그 글들 속에는 고마움과 따뜻함이 담겨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큰 위로이자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단독 근무 속에서 모든 상황을 혼자 감당해야 했고,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근무와 긴장 속에서 지친 날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서 중요한 것을 배웠다.
술은 결코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정신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정신과 병원에서 내가 맡았던 병동에,
나와 같은 나이의 한 환자가 있었다.
그는 참 재간둥이였다.
밝고, 눈치도 빠르고, 사람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간호조무사로서 첫 발을 내디딘 나에게
그는 환자이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조용히 나를 도와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신환이 들어오면 먼저 다가가
“이 간호사 선생님, 우리 병원에서 제일 친절한 분이에요.”
라고 말해주던 사람.
나는 아직 서툴렀고, 많이 부족했지만
그의 그런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가끔은 내가 그를 조용히 불러
작은 잘못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환자와 간호조무사라는 관계였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병원으로 옮긴 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히 함께 웃고, 마음을 나눴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부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조용하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 일은 나에게 깊은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과연 서로의 아픔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더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곳에서 배운 것은 분명하다.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어렵고, 동시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을,
지금도 조용히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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